[책마을] '파랑'을 사랑하는 이유…손에 잡을 수 없기 때문

입력 2022-04-29 17:51   수정 2022-04-30 00:38

괴테가 말했다.

“우리에게서 달아나는 사랑스러운 물체를 기꺼이 따라가듯, 우리는 파랑을 응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파랑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자신을 쫓도록 우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파랑은 ‘파랑’이라고 불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파란색 식물은 5%도 안 되고, 과일은 8%에 못 미친다. 지구상 척추동물 6만4000종 가운데 딱 두 종만 파란 색소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파랑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색이다. 5대륙 17개 국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랑은 하늘과 바다,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에서만 풍성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갈망하게 만든다.

《컬러의 시간》은 세상을 구성하는 일곱 가지 색의 정체를 역사적, 과학적 시각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인류가 색에 부여해온 의미를 예술과 고고학, 언어학, 심리학, 사회사와 우주물리학 등에 접목해 해석한다. 저자 제임스 폭스는 케임브리지대 미술사학과 학과장이다. BBC와 CNN 등에서 근현대미술 다큐멘터리를 진행하는 유명 방송인이기도 하다. 8년 넘는 연구와 조사 끝에 책을 펴냈다.

책은 단순히 빨강은 뜨겁고 파랑은 차갑다는 식의 색채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푸른’ 지구에 살면서 ‘검은’ 옷을 입어 죽은 자에게 조의를 표하고, ‘빨간’ 신호에는 멈춰 서며 ‘하얀’ 크림으로 피부를 깨끗하게 만든다. 각각의 색이 언제부터 왜 이런 의미를 가지게 됐는지 밀도 있게 분석한다.

하양은 주로 빛과 생명의 의미로 해석된다. 일부 아시아 지역에선 죽음의 색이다. 미국 정치에서 빨강은 보수, 파랑은 진보를 상징하지만 유럽에서는 그 반대다.

색의 의미는 색을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한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원래 어떤 색에도 뜻이 없었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는 것. 검정은 흔히 결핍과 악, 어둠, 불결함으로 연결된다. ‘흑색선전’이나 ‘블랙리스트’처럼 부정적인 은유로 쓰인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검정은 비옥한 토양의 색이자 생명의 색이었다. 노랑은 금빛 태양의 색으로 숭배받다가 한때는 누르스름하게 바래는 노화의 색으로 혐오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컬러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미술작품이 탄생한 배경, 예술가가 걸어온 삶의 궤적, 색이 사용된 방식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빨강이 두드러지는 아나 멘디에타의 ‘실루엣’, 보라색에 주목해야 하는 클로드 모네의 ‘국회의사당, 갈매기’까지 걸작을 사진과 함께 해설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